누구를 교부라 하는가
이 말은 문 앞에 줄을 쳐 놓은 회원제 모임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느슨합니다. 교부란 오랜 사용을 거쳐 교회가 자기 마음을 드러낸다고 여기게 된 글을 남긴 스승들입니다. 갈리아의 이레네오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스와 키릴로스,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증거자 막시모스, 다마스쿠스의 요한, 그리고 19세기의 이그나티 브리안차니노프처럼 가까운 시대의 저술가들까지 이어집니다.
어떤 명단도 반포된 적이 없고 아무도 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한 저술가를 교부로 만든 것은 수용이었습니다. 그의 글이 계속 필사되고, 예식에서 읽히고, 공의회에서 인용되고, 기도하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쓸모 있다고 여겨진 것입니다. 느리고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성경의 정경 자체를 낳은 과정과 거의 같은 과정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규범
교부들이 성경에 가지고 온 첫 번째 것은 기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례 때에 받은 신앙의 요약, 곧 신경의 조상인 레굴라 피데이(regula fidei), 신앙의 규범이었습니다. 성 이레네오스는 180년 무렵 「이단 반박」 제1권 제10장에서 이를 이렇게 펼칩니다. 한 분 하느님, 육신을 취하신 한 분 그리스도, 한 분 성령, 한 번의 다가올 심판이며, 게르마니아와 히스파니아와 갈리아와 동방과 이집트와 리비아의 교회들이 똑같은 말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 장에서 그는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누구도 잊지 못할 형상으로 설명합니다. 솜씨 좋은 장인이 값진 보석들로 임금의 모자이크 초상을 만듭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 돌들을 떼어 내어 여우 모양으로 다시 맞추어 놓고는, 그 보석들을 가리키며 이것이 임금이라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조각은 하나하나 진짜입니다. 그 배열이 아닐 뿐입니다.
그것이 당시의 영지주의 독자들을 향한 그의 고발입니다. 그들이 인용하는 구절은 하나하나 성경에 있지만, 그 구절들로 짜 맞춘 그림은 사도들이 전해 준 그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규범은 독자가 지금 임금을 보고 있는지 여우를 보고 있는지 일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덧붙인 무엇이 아닙니다. 성경을 온전히 읽을 때 성경이 이루는 모양입니다.
예형론, 곧 그리스도께서 읽으신 대로 구약을 읽기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내용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루카 24,27). 교부들은 이 구절을 허락이자 지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약은 그리스도교 부록이 붙은 별개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이며, 미리 그리고 형상으로 이야기된 것입니다.
사도들이 이미 시작해 두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 대해 이 일들이 예형으로 그들에게 일어났다고 말하고, 그들을 따르던 바위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합니다(1코린 10,1-11). 사도 베드로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의 형상으로 읽습니다(1베드 3,20-21). 주님께서는 민수기의 구리 뱀을 십자가의 형상으로(요한 3,14), 요나를 사흘의 형상으로 읽으십니다(마태 12,40).
한번 알아차리고 나면 예식 어디에서나 보입니다. 파스하 성가는 홍해를 건넌 일을 세례로 노래합니다. 대재기 첫 주간에 부르는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스의 대카논은 구약 전체를 훑으며 그 형상 하나하나를 지금 노래하는 이의 영혼에 적용합니다. 정교회의 예형론은 주로 학문적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해마다 소리 내어 하는 일입니다.
알렉산드리아: 글자 아래의 뜻
두 가지 강조점이 발전했고, 흔히 도시 이름으로 불립니다. 호메로스를 우의로 읽는 오랜 습관을 지닌 그리스 지성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본문 표면 아래의 영적 의미를 찾는 독자들을 길러 냈습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는 몸과 혼과 영에 상응하는 세 가지 뜻을 제안했고, 아주 많은 것을 그 자체 너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 전통은 디디모스를 거쳐, 그리고 훨씬 절제된 형태로 알렉산드리아의 성 키릴로스를 거쳐 이어졌습니다. 그의 주해서는 교회의 보물에 속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직관은 가장 좋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한 작은 민족의 연대기로만 읽지 않게 지켜 주었습니다. 가장 나쁠 때에는 본문에서 아예 떠올라 날아가 버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수용은 고르지 않았고, 그 점을 말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성경 해석의 영향은 지대했고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감사히 흡수되었지만, 후대의 추종자들과 연결된 일군의 교리는 6세기에 단죄되었습니다. 434년에 글을 쓴 레랭의 성 빈켄티우스는, 재능 있고 거룩한 스승도 존경받으면서 동시에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으뜸 사례로 그를 골랐습니다.
안티오키아: 역사가 먼저
안티오키아는 반대쪽으로 밀었습니다. 타르소스의 디오도로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테오도레토스는 평이한 역사적 뜻이 먼저이며 영적 의미는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자라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관조적 읽기를 테오리아라 불렀는데, 역사를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꿰뚫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의 강론은 이 방식이 본당에서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줍니다. 그는 한 절 한 절 짚어 가며 풍습을 설명하고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짚어 낸 다음, 예고도 없이 눈앞의 회중에게 돌아서서 문밖의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묻습니다. 아침이면 일터에 나갈 사람들을 위한 성경 해석입니다.
여기에서도 수용은 고르지 않았습니다. 안티오키아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엄격했던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는 553년 제5차 세계공의회에서 단죄되었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삼성사(三聖師) 가운데 한 분이며 정교회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설교자입니다. 교회는 그 방법은 간직했고, 그 방법을 쓴 모든 이가 이른 모든 결론을 간직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가 둘 다 간직한 까닭
이 두 강조점은 흔히 경쟁자로 제시되지만, 현대 학자들은 그 구분이 실제로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점점 더 단서를 달아 말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도 문자적일 수 있었고 안티오키아 사람도 형상적일 수 있었으며, 같은 저술가가 한 쪽 안에서 둘 다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래도 그 긴장은 실제이며, 흥미로운 점은 교회가 한쪽을 골라서 그 긴장을 해소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둘 다 간직한 까닭은 서로가 서로를 바로잡기 때문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절제가 없으면 우의는 독자가 들고 온 것을 무엇이든 찾아내는 기계가 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없으면 성경은 교훈이 붙은 고대사로 납작해집니다. 둘을 함께 붙드는 일은 불편하며, 그 불편함이야말로 요점의 큰 부분입니다. 본문이 자기를 넘어서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합의는 만장일치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흔한 오해 하나를 치워야 합니다. 정교회는 모든 교부가 모든 것에 대해 옳다거나 그들이 한 절 한 절 일치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연대기에 대해, 조연 인물의 신원에 대해, 특정 대목의 뜻에 대해, 때로는 그보다 더한 것에 대해 서로 모순됩니다. 교회가 찾는 것은 콘센수스 파트룸, 곧 무게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오래되고 널리 퍼져 있으며 한결같은 합의입니다.
레랭의 성 빈켄티우스는 이 두 절반을 모두 서술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규칙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모든 이가 믿어 온” 신앙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덜 유명하지만 같은 책에서 그는, 이해의 참된 진보가 허용될 뿐 아니라 요구된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그것이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리 안에서, 같은 뜻으로, 같은 의미로” 자라나는 한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교부를 읽는 일은 단순한 복종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기술입니다. 개신교 가정에서 자란 미국인 개종자 세라핌 로즈 신부는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보이려고 책 한 권을 썼습니다. The Place of Blessed Augustine in the Orthodox Church(정교회 안에서 복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자리)는 두 흐름을 한꺼번에 반박합니다. 서방 전거에서 끌어온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부풀려진 평가, 그리고 1970년대 일부 정교회 저술가들 사이에서 그를 이단이라 부르던 풍조입니다. 그가 대신 청한 것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의심할 수 없는 위대함과 그의 결점 모두에 마땅한 몫을 돌리는, 균형 잡힌 평가.”
세라핌 로즈 신부, The Place of Blessed Augustine in the Orthodox Church(정교회 안에서 복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자리), 제1장 8쪽 (알래스카의 성 게르만 형제회, 1983)
교부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경건하게 읽기
세라핌 신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과 예정론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글에서 자신이 그 교리들을 그리 흠모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논리적이라고 여긴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옹호한 것은 그 사람의 경건, 곧 『고백록』을 가득 채우는 통회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성을 헐어 버리면 그 경건까지 함께 무너지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규칙은 양쪽으로 작용하며, 옛 스승에게만큼이나 오늘의 스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Orthodox Tradition》지의 한 서평자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세라핌 신부의 다룸이 대부분의 글보다 균형 잡혀 있다고 평하면서, 같은 서평에서 그가 교부 전거 하나를 잘못 돌렸다는 점, 그리고 주로 러시아어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했기에 그리스 교부 인용이 늘 그리스어 원문에 충실하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스승을 경건하게 읽는 일에는 그를 확인해 보는 일도 들어 있습니다.
구도자에게 이것은 불안한 일이 아니라 자유로운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떤 저술 전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으며, 정교회 전통 안에서 그런 요구를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청해지는 것은 교회를 거슬러서가 아니라 교회와 함께 읽으라는 것, 수십 년 동안 기도해 온 사람들이 당신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았으리라 전제하라는 것, 그리고 자기 결론을 여러 세기에 걸쳐 쌓인 판단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쥐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여러분이 찾아낼 어떤 오류보다도 ‘지적으로 올바른’ 이들의 차가운 마음이 훨씬 더 두렵습니다.”
세라핌 로즈 신부, 미카엘 신부에게 보낸 1981년 6월 26일 편지, 수도사제 다마스키노스, Father Seraphim Rose: His Life and Works(세라핌 로즈 신부: 그의 생애와 저작), 제86장 (St. Herman Press, 2003)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들어가야 하는데, 교부들에게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첫째입니다. 그들은 성경이 영리함에 그 뜻을 내어 준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정화가 조명에 앞섭니다. 독자는 기도하고 금식하고 고백하고 자선을 베풀고 있으리라 기대되는데,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본문의 어려움보다 독자의 상태인 경우가 더 많다는 이해에서입니다.
세라핌 신부는 1981년 봄 캘리포니아의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같은 확신을 전했고, 그 강연은 작은 책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오기 전에 여러 해를 동양 철학에 바쳤던 사람이며, 그가 그들에게 들려준 것은 기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주장이 참인지 여부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매듭지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그것은 정교회의 실천에 관해 적지 않은 것을 설명해 줍니다. 왜 시편집은 초심자의 손에 쥐여 주면서 더 어려운 주해서는 기다리게 하는지, 그리고 왜 읽은 것이 아주 적은 수도자가 성경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지를 말입니다.
실제로는 이 모두가 대단할 것 없는 무엇에 이릅니다. 정교회 신자는 그날 다른 모든 정교회 본당과 함께 쓰는 고정된 봉독표에 따라 날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는 예식에서 성경이 노래되고 낭송되는 것을 듣는데, 거기에서 성가의 대부분은 그 자체가 성경 구절로 기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주해서를 읽는데 마태오 복음에 대한 크리소스토모스의 강론이 보통 출발점이 되며, 막히면 자기 사제에게 묻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읽기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혼자 읽지 않는 방식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신심의 습관과 다른 점은 한쪽이 진지하고 다른 쪽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많은 개신교 독자가 본문을 대하는 순전한 성실함에서 정교회 신자들을 부끄럽게 하며, 세라핌 신부도 자기가 알고 존경했던 개신교 신자들에 대해 그렇게 말했습니다. 차이는 이 책이 스무 세기에 걸쳐 뻗어 있는 한 공동체에 속하며, 그 공동체의 읽기가 나의 읽기에 대해 권리를 지닌다는 전제에 있습니다.
그 권리는 사양할 수 있으며, 사양하는 것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밝힐 수 있는 이유로 지녀 온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것을 두고 논쟁하기보다 시험해 보고 싶으시다면, 가장 간단한 실험은 한 달 동안 복음서 한 권을 그에 대한 크리소스토모스의 강론과 나란히 읽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것입니다. 코반의 저희 본당은 책을 빌려 드리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불리는 것에 주어집니다.”
세라핌 로즈 신부, God's Revelation to the Human Heart(하느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주시는 계시), 제2절 「계시」 (알래스카의 성 게르만 형제회, 제2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