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수도원에서 순종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스어 낱말은 휘파코에로, 글자 그대로는 ‘아래에서 듣는다’, 곧 무엇인가를 듣고 그에 따라 행한다는 뜻입니다. 슬라브어의 포슬루샤니에도 ‘듣다’라는 동사와 어근이 같으며, 러시아어에서는 이 낱말이 두 번째 뜻으로도 쓰입니다. 솥을 닦든 빵을 굽든 이름 목록을 베껴 쓰든, 수도원에서 맡은 일 자체를 ‘순종’이라 부릅니다. 수련사에게 자신의 순종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쉬운 말로 어떤 일을 맡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수도 생활은 세 가지 서원, 곧 순종, 무소유, 정결 위에 서 있습니다. 전통은 이 가운데 순종을 가장 기본으로 보는데, 나머지 둘의 뿌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돈은 버렸으나 자기 뜻은 버리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그대로 쥐고 있는 셈입니다. 수도 성소의 더 넓은 그림은 사람들은 왜 수도자가 됩니까?를 보십시오.
순종이라는 말은 오늘날 군대의 규율에서 권위주의 집단의 폐해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연상을 지닙니다. 정교회 저술가들은 이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의 순종이 자유롭고 사랑에서 나오는 행위이며, 자유롭게 드려지기에 비로소 쓸모가 있다고 말합니다.
수련사는 왜 부엌과 제빵실에서 시작합니까?
수도원에 새로 온 사람은 기도에 관한 강의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부엌, 제빵실, 청소, 채소밭, 마구간, 손님방 같은 일이 주어집니다. 수련사는 수습 중인 사람이며, 삭발 이전의 단계는 수도 삭발의 단계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영적인 만큼이나 실제적이고 심리적입니다. 기도 중에 사람을 괴롭히는 많은 정념은 평범한 노동에서 드러납니다. 굼뜬 동료에 대한 짜증, 기술에 대한 자부심,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시킨 데 대한 원망, 감사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입니다. 독방의 고요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숨어 있지만, 개수대 앞에서는 드러납니다. 수도 저술가들은 기도가 부엌에서의 처신으로 시험된다고 자주 말합니다.
노동은 또한 자기 하루의 저자가 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길입니다. 일을 반쯤 해 놓고 다른 곳을 도우러 가라는 말을 들은 수련사는 일이 요점이 아니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요점은 사람이었고, 그에게서 형성되는 것은 다른 이에 대한 주의와 신뢰입니다. 그래서 수도 전통은 순종을 규칙의 모음이 아니라 느린 고유의 교과과정을 지닌 학교라고 설명합니다.
수도원의 순종은 자유에 관한 것입니까, 굴종에 관한 것입니까?
정교회의 대답은 순종이 자유로 이끌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의 관점에서 자기 의지는 자유가 아니라 충동과 기분과 허영에 사로잡힌 일종의 속박입니다.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은 우연히 자기가 원하게 된 것에 크게 휘둘립니다. 수도자는 그 자기 의지를 끊음으로써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이 주제는 오래되었습니다. 6세기의 수도자로 가자 근처에서 장로 바르사누피오스와 요한 밑에서 수련한 가자의 도로테오스 압바는 자기 공동체에 영적 가르침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에는 자기 판단을 신뢰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습니다. 시나이에서 글을 쓴 성 요한 클리마코스(600년경)는 『천국의 사다리』 제4단을 “복되고 늘 기억될 순종”에 바쳤으며, 순종을 논쟁 없이 이루어지는 움직임과 자유롭게 받아들인 죽음으로 정의합니다(『사다리』 제4단, 표준 영어 번역). 두 저자는 모두 순종을 특정한 병, 곧 자기를 중심에 놓는 습관에 대한 약으로 다룹니다.
현대의 스승들도 다른 말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칼리스토스 웨어 주교는 참된 인도자가 제자의 의지를 꺾지 않고 선물로 받는다고 썼습니다. 선물은 억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수도원 순종의 첫째 한계이며, 강제로 사람을 따르게 하는 수도원은 자신이 키우려는 바로 그것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순종은 왜 복음의 중심에 있습니까?
수도 전통은 순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립비 2:8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고 쓰며, 같은 서간이 이를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의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겟세마니에서 그분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루카 22:42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라고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이 아들이시면서도 “당하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히브리 5:8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순종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와 맺는 관계에서 사랑이 취하는 형태입니다. 교부들은 여기서 아담의 선택이 뒤집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담은 움켜쥐었고 새 아담은 내어 주었습니다. 수도자가 실천하려 하는 겸손이 바로 그 겸손이며, 정교회 그리스도교의 겸손에 길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성전에서의 일이 있은 뒤 소년 예수께서 부모와 함께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내셨다”(루카 2:51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고 기록합니다. 나자렛의 가정에서도 본보기는 같았습니다. 수도원의 순종에 대해 달리 무슨 말을 하든,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모범입니다.
순종의 한계는 어디입니까?
한계는 실천만큼 중요합니다. 죄를 지으라는 명령에는 순종할 의무가 없습니다. 의회가 사도들에게 전교를 금했을 때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사도행전 5:29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 어떤 원장도 복음이 금하는 것을 명령할 권한이 없으며, 거짓말하거나 훔치거나 다른 이를 해치라는 말을 들은 수련사는 그것에 매이지 않습니다. 교회 저술가들은 건강, 가정의 의무, 양심을 해치는 지시는 그냥 따를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질문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교부들은 둘째 한계를 덧붙입니다. 인도자 자신도 예언자가 아니라 동료 종이라는 것입니다. 칼리스토스 주교가 요약한 전통은 장로를 신탁처럼 대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인도자가 틀릴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사로프의 성 세라핌을 비롯한 정교회의 여러 성인은 은총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서 말할 때는 자신도 때로 틀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판단을 전적으로 넘겨 버린 제자는 환상의 손쉬운 먹이가 됩니다. 그 위험은 영적 미혹(프렐레스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지를 온전히 드리는 일은 수도원에 속하며, 알려진 공동체 안에서 알려진 원장에게 여러 해에 걸쳐 드립니다. 정교회 스승들은 본당 사제가 평신도에게 이를 요구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사람을 두렵게 하거나 의존적으로 만들거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관계는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이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런 처지에 있다면 고백 사제나 주교와 상의하십시오.
평신도는 서원 없이 어떻게 순종을 실천할 수 있습니까?
서원은 수도자의 것이지만 순종하라는 복음의 부르심은 모든 이를 향합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깨어 지키는 사람들입니다”(히브리 13:17 오디오 성경에서 듣기).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이를 더 조용한 형태로 삽니다. 참석하기로 한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의 단식을 지키고, 정기적으로 고백하며, 사제의 조언을 성경과 교부들에 견주어 헤아릴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규칙을 자신의 식욕이 아니라 교회가 정하기에, 정교회의 단식은 평신도에게 가장 흔한 순종의 학교입니다.
평신도의 순종 상당 부분은 평범한 의무에서도 발견됩니다. 밤에 일어나는 부모, 따분한 일을 잘 마치는 직장인, 사소한 일에서 양보하는 배우자는 모두 수련사가 부엌에서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부들은 이를 눈에 띄지 않는 의지의 훈련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제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말하는 회개의 예식도 그 한 형태입니다. 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합니까?를 보십시오.
영적 아버지와 더 가까운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길은 교회가 권하는 길입니다. 시간을 두고, 그 사람의 삶의 열매를 살펴보며, 평범한 조언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적 아버지와 장로들을 보십시오.
누구나 이 전통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두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첫째, 교정받으려는 마음은 약함이 아니라 건강의 표지이며, 누구에게서도 지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경우가 드뭅니다. 둘째, 순종은 책임을 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수도 전통은 양심에서 덜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양심에 요구합니다. 제자는 어떤 명령이 자신이 따를 수 있는 명령인지 기도 중에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듣는 일은 그리스어 낱말의 뿌리에 놓인 ‘들음’을 실천하기 시작하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성찬예배 페이지에서 예배를, 교회 달력에서 교회력을 따라갈 수 있고, 여기 인용된 구절은 오디오 성경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회고록 『일상의 성인들과 그 밖의 이야기』는 여러 장에서 수도원의 순종을 다루지만, 이 글은 그 책이 아니라 교부들과 성경에 근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