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이 가장 먼저 보는 것
첫인상은 얼굴들입니다. 정교회 성당에는 빈 벽이 거의 없습니다. 회중과 제대 사이에는 그림 판들로 이루어진 성화벽이 서 있고, 성당 본체 곳곳의 경대 위에도 판들이 놓여 있으며, 천장도 대개 차 있습니다. 그 앞에서는 놋쇠 모래 그릇 안의 초들이 탑니다. 사람들이 들어와 성호를 긋고 절하고 그 판에 입을 맞춥니다. 아무도 처음 온 이에게 이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데, 그것과 함께 자란 이들에게는 설명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와 복음주의 교회, 초교파 교회 배경에서 오신 방문객들은 흔히 특정한 성경 구절을 마음에 품고 오시며, 그것은 옳은 일입니다.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까다롭게 굴려고 끄집어낸 사소한 반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계명 안에 있고, 단호하며, 성경을 진지하게 대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이 글은 그 물음을 손사래로 밀어내지 않고 마땅한 대답을 드리려 합니다.
그 계명을 통째로 읽으면
본문은 분명합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마라.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마라”(탈출 20,4-5, KJV). 이 구절만 따로 읽으면 문제는 다 끝난 것처럼 보이며, 정교회의 입장을 정직하게 설명하려는 어떤 글도 이 구절이 모호하다고 우기며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율법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몇 장 뒤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속죄판을 위하여 금으로 커룹 둘을 만들되 날개를 펴고 서로 마주 보게 하라고 명하십니다(탈출 25,18-20). 솔로몬의 성전은 안팎으로 커룹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을 새겨 넣은 것이었습니다(1열왕 6,29). 광야에서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사람이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민수 21,8-9).
그렇다고 반대편 논증이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세기 뒤 히즈키야는 바로 그 구리 뱀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에 향을 피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2열왕 18,4). 그러므로 성경은 형상을 만들라고 명하기도 하고, 형상 하나가 부서진 일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 계명은 조각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에게 만드신 분께 속한 것을 드리는 일을 금하는 것입니다. 진짜 물음은 형상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앞에서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가입니다.
강생이 바꾸어 놓은 것
정교회의 대답은 예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주장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KJV).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라 부릅니다(콜로 1,15, KJV). 사도 요한은 자기 첫째 편지를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목록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바라본 것, 우리 손으로 만진 것.
논쟁이 한창이던 8세기에 글을 쓴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그 논증을 두 걸음으로 펼쳤습니다. 먼저 그는 반론을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보이지 않으시고 형체가 없으시며 한정되지 않으시고 형상이 없으신 하느님을 누가 본떠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성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불경의 극치이다.” 그는 율법 아래에서 하느님의 형상이 드물었던 까닭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전환이 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참으로 사람이 되시어” 땅에서 사시고 보이신 뒤에는, 보인 것은 기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An Exposition of the Orthodox Faith(정교 신앙 해설) 제4권 16장).
그러므로 정교회의 입장은 둘째 계명이 폐지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어떤 사람도 지어낼 수 없었을 그 모습을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그리는 그리스도인은 신성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한 사람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이콘 문제가 언제나 강생이 실제였는가에 관한 물음으로 다루어져 온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이 문제로 다툰 한 세기
그 다툼은 조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726년 무렵부터 레온 3세 황제는 공공장소에서 형상을 치우기 시작했고, 그 뒤 거의 한 세기 동안 제국의 정책은 형상에 반대하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이콘을 옹호한 수도자들과 주교들은 직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으며 더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754년 히에리아에서 열린 큰 공의회는 형상을 만드는 일 자체를 단죄했고, 그 지지자들은 자기들이 교회를 우상 숭배에서 정화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콘을 옹호한 이들은 그리스도론에 근거하여 반박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그릴 수 없다면 그분의 인성이 온전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분의 신성이 인성과 혼동되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논쟁은 수십 년 이어졌고 양쪽 모두에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787년 이리니 여제와 타라시오스 총대주교는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소집했고, 정교회는 이를 제7차 세계공의회로 셉니다. 성화상 파괴는 815년 레온 5세 치하에서 되돌아왔다가, 843년 테오도라 황후와 메토디오스 총대주교가 형상을 회복하면서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 회복은 지금도 대사순절 첫 주일에 ‘정교회 승리 주일’로 기념되며, 본당마다 이콘을 들고 행렬합니다.
제7차 공의회가 실제로 규정한 것
공의회는 이콘이 허용된다고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공의회는 문서로 구별을 지었고, 그 구별이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어머니와 천사들과 성인들의 형상은 성당과 집에 모셔야 하며, “이것들에는 합당한 인사와 존경의 공경례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어로는 티메티케 프로스키네시스입니다. 그러나 “오직 신성에만 속하는 신앙의 참된 흠숭(라트레이아)을 드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공의회는 못 박습니다.
그 근거는 네 세기 앞서 성 바실리오스가 진술한 원리입니다. “형상에 바쳐지는 공경은 그 형상이 나타내는 분께 건너가며, 형상을 공경하는 이는 그 안에서 그려진 그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콘은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 앞에 드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계속 나아갑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또한 그 계명을 꼼꼼히 읽음으로써 성경의 반론에 직접 답했습니다. 공의회가 주목한 것은, 성경이 공경은 하느님께 드리라고 말하면서도 ‘오직’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어 낱말이 친구 사이의 절부터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섬김에 이르면 본문은 그 제한을 덧붙입니다. 공의회는 “너는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를 인용하며 “라트레이아는 오직 하느님께만 드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공의회 자신의 말을 영역으로 읽으실 수 있으며,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이콘에 입 맞출 때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
잠시 신학을 걷어 내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한 여인이 길에서 들어와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성호를 긋고 절한 다음 그림 판의 모서리에 입을 맞춥니다. 그는 공항에서 자기 어머니에게 할 법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회 자신이 이 점을 짚었습니다. 그 그리스어 동사가 인사하다와 입 맞추다를 모두 뜻한다고 밝히고, 다윗이 요나탄 앞에 엎드려 그에게 입 맞춘 일을 인용한 것입니다(1사무 20,41. 공의회 본문에서는 그리스어 성경의 장절로 인용됩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도 그만큼 말해 둘 만합니다. 나무가 들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판은 나무이고 물감은 달걀에 갠 안료이며, 이콘이 파괴된다고 해서 그 성인이 상하지 않습니다. 이콘은 거처가 아니라 만남의 자리입니다. 가장 가까운 일상의 비유는 과부가 침대맡에 두고 지나갈 때마다 쓰다듬는 사진이겠지만, 그 비유는 불완전합니다. 교회는 감정 이상의 것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공경이 실제로 그분께 가닿는다는 것, 그리고 성인들이 살아 있으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동작은 단순하며, 방문객은 그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교회 신자들은 성호를 두 번 긋고, 이콘에 입을 맞추고 — 관례상 얼굴이 아니라 손이나 발, 또는 옷자락에 맞춥니다 — 다시 성호를 긋습니다. 초는 작은 봉헌으로 켜 두어 기도가 타오르게 둡니다. 처음 온 이가 따라 하는지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반론이 여전히 힘을 지니는 지점
그 계명이 이름 붙인 위험이 정교회의 삶에 한 번도 닿은 적이 없는 것처럼 남겨 둔다면 정직하지 못할 것입니다. 닿았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특정한 이콘을 부적처럼 다루고, 성유등을 보험처럼 다룹니다. 그리고 정교회 자신의 수덕 저술가들은 여러 세기 동안 그 점을 에두르지 않고 말해 왔습니다. 개종자였던 세라핌 로즈 신부는 종교적 외형 일반에 대해 여기에 그대로 들어맞는 말을 남겼습니다.
바깥쪽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 가짜가 될 수 있다.
세라핌 로즈 신부. 수도사제 다마스킨, Father Seraphim Rose: His Life and Works(세라핌 로즈 신부: 그의 생애와 저작) 63장(St. Herman Press, 2003)에서 인용
교회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시금석
안전장치는 공의회가 이름 붙인 바로 그것이며, 검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교회 성당에서 무엇이 말해지는지 들으시고, 누구에게 말이 건네지는지 눈여겨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이콘 앞에서 바치는 기도는 그리스도께 드려집니다. 성인의 이콘 앞에서 바치는 기도는 그 성인에게 그리스도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그 어법은 친구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때 쓰는 어법과 같습니다. 그림에게 드려지는 정교회 기도는 하나도 없고, 그림을 무언가의 원천으로 다루는 정교회 예식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방문객이 믿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철야 기도 뒤편에 서서 본문을 따라가며, 말해지는 바가 여기 서술된 바와 맞는지 보십시오.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서 말과 동작이 갈라진다면 그 잘못은 그 사람에게 있으며, 교회는 그렇지 않은 척한 적이 없습니다.
문간에 서서
둘째 계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벽을 비워 둔 전통에서 오셨다면, 여기 있는 어떤 것도 당신을 향한 고발이 아닙니다. 그 경외심은 작은 것이 아니며, 정교회도 바로 그 걱정을 두고 한 세기 동안 싸웠습니다. 정교회가 다르게 결론 내린 지점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셨을 때 스스로 그려질 수 있게 되셨다는 것, 그리고 이콘의 옹호자들은 형상을 거부하는 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그 육신의 실재성이 의심받게 되리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교회의 논리이며, 밀어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울에 달아 보시라고 펼쳐 놓은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읽으시는 분이 아니라 저희에 관한 것입니다. 이콘을 둘러싼 논쟁은 시작되기도 전에 지는 일이 많습니다. 낯선 이가 먼저 만나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그림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 한 문의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세라핌 로즈 신부는 본당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자리에 책임을 놓았고, 이 본당은 그 말을 남에게 겨누기보다 우리 자신에게 겨누어 인용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탓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정교 신앙을 살아 내고 가르치지 못한 우리의 탓 말이다
세라핌 로즈 신부, 1980년 11월 27일 편지. 수도사제 다마스킨, Father Seraphim Rose: His Life and Works(세라핌 로즈 신부: 그의 생애와 저작) 84장(St. Herman Press, 2003)에서 인용